[광화문에서/김정은]예술가들의 못자리 역할을 한 ‘학전’과 김민기 대표가 남긴 것|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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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문화부 차장

“여기는 못자리 농사다. 못자리 농사는 애들을 촘촘하게 키우지만, 추수는 큰 바닥으로 가서 거두게 될 것이다.”

1991년 3월 1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학전’ 소극장이 개관하던 날, 김민기 대표가 한 말이다. 소극장 문화를 대표해 온 학전은 배울 ‘학(學)’에 밭 ‘전(田)’자를 쓴다. “문화예술계 인재들의 못자리가 되겠다”는 김 대표의 초심을 담아 지어진 이름이다. 학전은 이름값을 증명하듯 배우 설경구, 황정민, 김윤석, 조승우, 이정은, 장현성 등 굵직한 스타들을 낳았다.

가객(歌客) 고(故) 김광석은 학전에서 1000회 공연을 열었고, 1991∼1995년엔 매년 라이브 콘서트도 열었다. 들국화, 안치환, 이소라, 장필순, 윤도현, 성시경, 유리상자, 장기하 등도 학전에서 노래했다.

33년간 대학로를 지켜온 학전이 다음 달 문을 닫는다. 위암 투병 중인 김 대표의 건강 악화와 경영난이 겹친 결과다. 2014년 이미륵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로 참석한 김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1996년 개관한 ‘학전그린소극장’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김 대표에게 수상 축하 인사를 건넨 뒤 공연계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대학로의 높은 임차료와 제작비 상승 등으로 한국 연극 대중화의 씨앗이 된 대학로 소극장들의 폐관 소식이 들려와 안타깝다”는 말을 전하자 그는 말없이 한참을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곤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툭 던졌다. “맞아요. 한국 공연계는 늘 척박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돈이 안 되는 일이어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지.”

헛된 말이 아니었다. 그의 삶을 되돌아보면 김민기는 여느 제작자들과 달리 척박한 공연계에서 돈이 안 되지만 의미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원작자에게 저작권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던 시절, 그는 1990년대 공연계에서 출연진 ‘서면 계약’, 배우들에게 유료 관객 입장 수익을 나눠 주는 ‘러닝개런티’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적자가 나도 30만 원의 개런티를 배우들에게 지급했다. 이 때문에 뮤지컬 ‘개똥이’가 흥행에 실패했을 땐 자신이 소유한 경기도 일산의 아파트를 처분해 배우들에게 개런티를 나눠준 이야기는 유명하다.

학전은 오래전부터 수익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였다. “태어나 처음 보는 공연이 좋아야 안목을 갖출 수 있다”는 김 대표의 철학에 따라 학전은 뮤지컬 ‘고추장 떡볶이’ 등 어린이 공연 제작에 힘써 왔다. 어린이 작품들은 작품당 4000만∼5000만 원씩 적자가 났고, 김 대표는 오랜 시간 저작권 수익을 집에 가져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소외 지역 아이들을 위해 전국의 폐교에 무대를 설치하고 지역 공연을 펼쳤다. ‘누구나 좋은 공연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김 대표의 뚝심 덕분이었다.

다행히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3월부터 학전의 건물주와 임대차 계약을 맺고 민간 위탁으로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학전의 이름을 계속 쓸지에 대해선 김민기 대표와 협의를 해야 하는데, 현재 김 대표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협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학전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일어나/일어나/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학전의 대표 가수 김광석의 노래 ‘일어나’의 노랫말처럼 학전이 다시 한번 힘을 내 일어났으면 좋겠다.

광화문에서

[광화문에서/강경석]‘억 소리’ 나는 저출산 정책… 효과 따져 장기 대책 세워야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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