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 병원비 위해 데뷔한 ‘한국의 그레고리 펙’|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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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남궁원 폐암투병중 별세

‘빨간 마후라’ 등 345편 영화 출연

자식들 유학 위해 밤무대 뛰기도

홍정욱 前의원이 아들… “가족장”

2011년 데뷔 53년 만에 첫 TV 드라마 출연에 도전하며 스포츠동아와 인터뷰를 했던 배우 남궁원 씨. 당시 그는 “드라마 출연
여부를 놓고 가족회의를 세 번 열 정도로 고민이 컸다”라면서도 “훗날 ‘저 사람 참 멋있다’란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동아일보DB

‘원조 조각 미남 배우’로 1960, 70년대를 주름잡은 배우이자 홍정욱 전 국회의원의 부친인 남궁원(본명 홍경일) 씨가 5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1934년 경기 양평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양대 화학공학과 재학 중 어머니의 암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1958년 영화 ‘그 밤이 다시 오면’으로 데뷔한 이후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1959년), ‘빨간 마후라’(1964년), ‘장한몽’(1969년), ‘화녀’(1971년) 등 345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단연 주목받은 것은 고인의 출중한 외모였다. 180cm가 넘는 큰 키에 짙은 눈썹, 날렵한 턱선을 지녀 ‘한국의 그레고리 펙’이라 불렸다. 대학 시절부터 영화 출연 제의가 쏟아졌다고 한다. 고 신상옥 감독은 생전 고인을 “외국의 미남 배우와 견주어도 모자랄 것이 없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너무 잘생겼던’ 탓일까. 반듯한 모범생, 풍채 좋은 호남 등 주어진 배역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았다. 고인 스스로도 훗날 “임금보다는 머슴, 007보다는 빨갱이 역을 맡고 싶었다”며 아쉬워했다.

고인은 임권택 감독의 ‘풍운의 검객’(1969년), 이만희 감독의 ‘여섯 개의 그림자’(1969년), 이두용 감독의 ‘내시’(1986년) 등으로 연기 변신을 꾀하기도 했다. 김진규, 신성일, 최무룡 등 내로라하는 당대 스타들과 인기를 겨뤘다. 2011년 방영된 SBS 드라마 ‘여인의 향기’는 고인이 출연한 유일한 TV 드라마이자 유작이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 한국영화배우 복지회장 등을 지냈고 2016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연기 인생만큼 고인의 ‘자식 농사’도 관심을 받았다. 고인은 홍 전 의원을 비롯해 세 남매를 모두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보냈다. 고인은 생전 방송 인터뷰에서 “(톱 배우였지만) 경제적 압박이 심했다. 자식을 위해 밤무대 행사를 했다”고 털어놨다. 서울에서 일하면 훗날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 봐 지방 나이트클럽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홍 전 의원은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틈을 내 국내 배낭여행을 하던 중 우연히 아버지의 밤무대 출연 포스터를 발견하고 큰 충격에 빠졌다”며 “아버지는 TV에도 출연하지 않을 정도로 영화에 대한 자긍심이 강한 분이셨는데, 아들 학비를 마련하고자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셨던 것”이라고 돌아보기도 했다.

고인은 최근 수년간 폐암 투병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영화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치른다. 유족으로는 아내 양춘자 씨와 아들 정욱 올가니카 회장, 딸 나리 성아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8일 오전 9시 반. 02-3010-2000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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