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전쟁속 재판만 107회… 8년간 사법리스크에 경영 발목|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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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합병-회계부정 1심 전부 무죄]

“이재용 매주 1, 2회씩 법원 출석… 해외 출장 등 경영활동 차질 불가피”

삼성, 중장기 투자-M&A 속도낼듯

지배구조 개선도 본격화 가능성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당 합병·회계 부정 관련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래 줄곧 삼성그룹의 발목을 잡아 온 사법 리스크가 어느 정도 해소됐다. 이 회장은 그동안 검찰 조사 및 재판 출석으로 장기 해외 출장 등에 제약을 받았고 그룹 차원의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결정도 정체됐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 속에서 삼성은 사법 리스크라는 경영 족쇄에 발목이 잡혀 온 것이다.

● 이재용 회장, 재판 출석 횟수 96회

이 회장은 앞서 국정농단 사건으로 복역하다 2021년 8월 가석방된 이후에도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를 받으며 경영 보폭이 제한됐다. 해당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참여연대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고발로 검찰은 2018년 수사에 착수했고, 2020년 9월 이재용 회장과 전현직 임직원 11명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삼성전자 등 10개 계열사를 37회, 임직원 주거지 등을 13회 압수수색했고 300여 명에 대해 860여 차례 소환 조사를 진행했다.

검찰 기소 이후에도 1심 선고까지는 3년 5개월이 걸렸다. 이 회장은 2021년 4월부터 1심 선고일인 5일까지 2년 10개월간 총 107회 재판 중 96회 출석했다. 2022년 회장 취임 첫날과 이듬해 취임 1주년에도 법원에 있었다.

그간 글로벌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투자자들을 직접 만나며 그룹 사업을 뒷받침하던 이 회장은 법원이 쉬는 명절 기간을 이용하거나 재판부로부터 불출석 허가서를 받아야 해외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사법 리스크 이전 매년 참석하던 미국 정·재계 거물들의 비공개 회담 ‘선밸리 콘퍼런스’도 2016년을 마지막으로 찾지 못했다. 재계 관계자는 “매주 1, 2회씩 법원에 출석해야 했던 만큼 해외 파트너 방한을 비롯한 주요 사업 미팅 일정 조율에도 차질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만큼 삼성은 그룹 차원의 중장기 의사결정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2021년 이후 삼성전자가 1억 달러(약 1300억 원) 이상 투자해 지분을 확보하거나, 기업을 인수합병한 사례는 없었다. 주력 사업들도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반도체(DS) 부문에서는 지난해 14조8800억 원의 적자를 내며 2년 만에 글로벌 반도체 기업 1위(매출 기준) 자리를 미국 인텔에 내줬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2011년 첫 스마트폰 세계 판매 1위를 차지한 지 12년 만에 미국 애플에 1위 자리를 내줬다.

● 중장기 투자·지배구조 개선 등 나설 듯

5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날 1심 재판이 끝난 직후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복귀했다. 앞서 이어졌던 재판들에서도 이 회장은 공판 일정이 끝나는 대로 대부분 서초사옥으로 돌아와 업무를 이어갔다.

사법 리스크를 덜어낸 이 회장은 최근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지급 지연과 중장기 투자, 신규 M&A 등 산적한 과제들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간 삼성은 차량용 반도체 기업 등 사업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다양한 분야에서 M&A를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이 그룹 지배구조 개선 작업을 본격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회장이 “4세 승계는 없다”고 선언한 이래 삼성은 주요 계열사의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등 수평적이고 투명한 거버넌스를 만들기 위해 여러 시도를 이어 왔다. 2021년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생명 3개사가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의뢰한 지배구조 개편안 연구용역 보고서도 최종본이 현재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에서 내부 검토 중인 단계다.

미등기이사인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나 그룹 차원의 컨트롤타워 회복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부회장이던 2016년 10월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사내이사로 선임되며 첫 등기이사직을 맡았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2019년 10월 임기가 만료된 이후 재선임 안건을 올리지 않아 현재까지 미등기·무보수로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4대 그룹 중 총수가 미등기이사인 곳은 삼성뿐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 회장의 책임경영을 위한 등기이사 복귀와 그룹 차원의 시너지를 위한 컨트롤타워 회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구민기 기자 koo@donga.com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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