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 내려놓은 ‘양궁 여제’ 기보배 “다시 태어나면 절대 안 해”|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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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기자회견서 소회…2010년대 올림픽 3관왕

“런던올림픽 마지막 슛오프, 가장 기억에 남아”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목에 걸며 2010년대 한국 여자 양궁을 이끌었던 ‘여제’ 기보배(36)가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기보배는 14일 오전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7년의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소회를 밟히는 자리를 마련했다.

기보배는 “1997년 처음 활을 잡고, 27년 동안 이어온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며 “올림픽 금메달(3개)을 포함해 세계선수권대회, 월드컵, 아시안게임, 국내대회 등에서 총 금메달 94개, 은메달 50개, 동메달 43개의 적잖은 성과를 냈다. 이 모든 결과는 국민 여러분의 응원과 정상에 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스승님과 선후배,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입을 열었다.

안양서중 3학년이던 2002년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일찌감치 여자 양궁을 이끌 재목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로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기보배는 2012년 런던올림픽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로 전성기를 보냈다.

이 시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금메달을 5개나 목에 걸며 명실상부 한국 여자 양궁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런던올림픽 개인전 결승전을 꼽았다. 이 경기에서 기보배는 마지막 슛오프 끝에 아이다 로만(멕시코)을 극적으로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기보배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런던올림픽 슛오프의 마지막 한 발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한 발로 제 인생이 달라질 수 있었다. 힘든 과정과 순간이었지만 금메달로 이어지면서 제 인생에서 전환점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4년 뒤, 리우올림픽 개인전 준결승이다. 대표팀 동료 장혜진에게 패해 결승 문턱에서 좌절, 개인전 2연패에 실패했다.

기보배는 당시가 생생히 기억나는 듯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2연패를 기대하는 분들이 많았고, 저도 꿈이 컸다”며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정도로 많은 아쉬움이 남는 경기”라고 했다.

2017년 결혼해 이듬해 출산한 기보배는 긴 공백을 극복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8위로 태극마크를 달며 저력을 보여줬다.

최종 평가전에서 후배들에게 밀려 결국 국제 무대에 나서지 못했지만 ‘엄마 궁사’의 위대함을 보여줬다. 2024 파리올림픽까지 도전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기보배는 “한국에서 양궁으로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만큼 많은 고충과 부담감이 동반된다”며 “런던, 리우 때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준비할 수 있을까라는 스스로의 의심이 있었고, 후배들이 잘해낼 것이라고 믿었다. 자리에서 물러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기보배는 자신의 경험과 이론을 접목하기 위해 바쁜 와중에 학업을 병행했다. 2022년 조선대에서 체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향후 양궁의 생활체육화를 위해 힘쓰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가족 얘기를 이어갈 때에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기보배는 “아이의 엄마와 아내로서의 역할을 잊지 않겠다. 2018년 임신 2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 비를 맞으며 활시위를 당기던 때가 생각난다”며 “종별선수권대회였는데 그때 1등을 했다. 그리고 출산 이후에 출전했던 2021년 올림픽제패기념 회장기대회에서 1등을 했다. 그때 받은 국내대회 메달이 올림픽만큼이나 값진 메달이라고 생각한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도 “양궁 선수를 엄마로 둔 딸은 한창 응석을 부릴 나이에 엄마의 곁을 떠나서 지내야만 했다. 주말에만 만나는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며, 펑펑 울던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남편은 저의 훈련을 위해서 육아휴직을 마다하지 않았다”며 “가족의 헌신적인 도움 덕분에 저는 지난해에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등 은퇴하는 순간까지도 최고의 기량을 지킬 수 있었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이날 행사에서 남편 성민수씨, 딸 성제인양을 비롯해 가족은 기보배의 27년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기념해 순금 27돈 금메달을 제작해 깜짝 선물로 건넸다. 제인양이 직접 금메달을 목에 걸어줬다.

기보배는 딸에게 양궁을 시킬 계획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동안 양궁뿐 아니라 모든 운동을 시키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작년 전국체전을 10월에 마치고 이후 5개월가량 함께 지내보니 저 못지않게 승부욕이 강해 보인다”며 “본인이 원한다면 양궁이든 어떤 스포츠든 시키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 했다.

긴 시간 승부사로 살아온 기보배는 기자회견 내내 자주 눈물을 보였다.

기보배는 “다시 태어나면 절대 양궁을 하고 싶지 않다. 우리나라에 정말 기량이 좋은 선수들이 많다. 거기서 살아남는다는 걸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며 “항상 긴장감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게 힘들었다. 항상 무한 경쟁 속에서 내 목표를 이뤄야겠다는 부담감도 싫었다. 한국 양궁 선수로서 살아간다는 건 정말 힘든 것 같다. 다만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양궁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글썽였다.

올해 파리올림픽에서 여자 양궁 단체전 10연패에 도전할 후배들을 향한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

기보배는 “파리올림픽에서 단체전 10연패에 도전하는데 제가 7연패와 8연패를 했었다. 중압감과 부담감은 말할 수 없이 무거웠다”며 “작년 아시안게임에서 활약하는 우리 후배들을 보면서 파리올림픽도 준비만 잘하면 새 역사를 쓸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겠다”고 했다. KBS 해설위원으로 파리올림픽을 함께 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항상 앞만 보고 달려왔던 제가 막상 활시위를 내려놓으려고 하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서도 “저의 빈자리는 이제 든든한 후배들이 채워줄 거라 굳게 믿는다. 한국 양궁에 대한 지속적인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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